봄볕은 마당귀에 노랗게 내려앉고 닭들은 울타리 밑을 긁으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나는 새참을 이고 밭두렁을 지나가다가 점순이가 감자를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감자 세 알을 내밀었다. 갓 쪄낸 듯 김이 오르고 껍질에는 흙냄새가 남아 있었다.

나는 괜히 딴청을 피웠다. "난 감자 안 먹는다." 하고 고개를 돌렸지만 속으로는 그 따뜻한 냄새가 자꾸만 따라왔다. 점순이는 눈을 흘기더니 감자를 도로 품에 넣고는 휙 돌아섰다. 그 뒤로 우리 집 수탉과 자기네 수탉을 붙여 놓고는 날마다 싸움을 시켰다. 볏이 붉은 닭들이 퍼덕거리면 마을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나는 괜스레 분해서 흙덩이를 만지작거렸다.

산비탈 밭에는 보리가 파랗게 올라오고, 멀리 냇물 소리가 졸졸 들렸다. 어른들은 웃으며 모른 체했지만 나는 그 웃음이 더욱 얄미웠다. 그래도 저녁때가 되어 점순이가 울타리 너머로 힐끗 바라보면, 낮에 한 말이 마음에 걸려 슬그머니 헛기침을 했다. 봄날은 그렇게 길고도 짧았다. 닭 울음과 감자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마을 위로 번져 갔다.
